모두가 하나 되는 예술과 가치

프로젝트 1111

11th NOVEMBER —

11th JANUARY 2021

모두가 하나 되는 예술과 가치

프로젝트 1111

11th NOVEMBER — 

11th JANUARY 2021

교환을 제안합니다 | Suggesting Barter

제안자명(NAME): 전해리
이메일(E-MAIL):jeonhaeri0111@gmail.com
제안사항 또는 품목(Submission Item): 생각과 생각이 담긴 음성파일 

(가장 하단에 파일이 있습니다)
내용(Description):

3. 감정

글에는 마음이 담긴다. 그 마음은 글을 말로 옮겼을 때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다. 글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문장이란 형상과 말의 형태로 체현했다. 어떤 문장인지는 들어보면 안다. 

*교환자께서는 본인의 교환품과 이 음성파일과 이로써 대신하는 저의 마음가짐을 교환합니다.

-해설글-

<골> on Concrete 1111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을 시작하는 데 있어 틀을 우선 잡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틀은 한계에 비유되곤 하는데, 그에 대한 유의어로는 골이 있다. 골은 ‘물건을 만들 때 일정한 모양을 잡거나, 뒤틀린 모양을 바로잡는 데 쓰는 틀’을 의미해 틀처럼 한계보단 기준에 가깝다. 이 정의를 공유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형(型)이다. 형에는 다른 뜻도 있다: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이루는 유형이나 형태.’ 이렇게, 형식적인 것에 벗어나되 형식을 이해하고자 하는 <골>은 글에 대한 관습적 관념을 새롭고 다르게 성립하고자 하는 예술 실험이며, 글에 대한 표현 확장을 꾀하는 <추상>의 첫 전시품이고, 또 이러한 나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제안하기 위해 내놓는 교환품이자 Studio Concrete의 프로젝트인 Concrete 1111이 지닌 가치에 대한 동의안이다. 그리고 골과 비슷한 발음을 내는 영어 Goal의 의미인 ‘목표’ 또한 <골>이 되겠다.

1. 아이디어

무엇이든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은 관념의 화신이니, 관념은 어디에서 발원할까?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근원이다. 씨앗에 비유될 수 있는데 이는 비유일 뿐이다. 아이디어엔 정해진 형체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아이디어를 한글이란 유형적 형식과 목소리란 무형적 형태인 형이하(形而下)로 표현해 보이겠다. *이 표현이 담긴 음성 파일은 나의 생각이란 가치를 대변합니다. 내가 교환자 당신과 교환하는 건 나의 생각입니다.

2. 사고

하나하나의 관념을 연결해야 생각이 탄생된다. 형이상(形而上)인 관념을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기본 수단인 선으로 형용한다. *이 생각을 나타내는 바탕과 표현에 쓰인 도구는 종이와 연필로, 교환자는 세 장의 그림을 손에 넣고 나의 생각을 마음에 품는 겁니다.

3. 감정

글에는 마음이 담긴다. 그 마음은 글을 말로 옮겼을 때 비로소 정체를 드러낸다. 글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을 문장이란 형상과 말의 형태로 체현했다. 어떤 문장인지는 들어보면 안다. *교환자께서는 본인의 교환품과 이 음성파일과 이로써 대신하는 저의 마음가짐을 교환합니다.

4. 존재

글을 쓰는 건 관념, 사고, 감정을 전부 총합하여 하나의 존재로 나타내는 일이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쓰는 일이란 마음 속에 있던 걸 실질로 옮기는 일에 가깝다. 이를 형영상동(形影相同)에 은유한다. 작문을 손짓이란 형체와 그에 비치는 그림자란 형적(形跡)으로 그려냈다. *이 생각에 대한 동작을 촬영한 영상 파일을 교환자의 교환품과 교환합니다.

<<추상>>을 여는 글

당신에게 작가란 어떤 사람입니까? 만약, 책을 출판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라면 제가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 있으실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믿는 작가의 정의는 약간 다르거든요. 물론, 작품이 손에 잡히는 물질로 태어나고, 작가가 출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몹시 중요합니다. 당연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간행과 소득만이 작가를 정의하는 절대적 자격이자 필수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글로 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매일 글을 씁니다. 제가 쓰는 글은 시, 에세이, 극, 수필, 소설,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습니다. 동시에, 꽤 오래 전부터 재미있는 상상을 했습니다: “글이 형식을 벗어나면 어떨까?”

일반적인 사람들과 저의 작가에 대한 정의가 살짝 다르듯, 제가 세운 글에 대한 정의도 조금은 다릅니다. 생각을 문자로 옮긴 기록이라는 아주 전통적이자 기본적인 정의를 바탕으로 조금 더 근본적으로 논하자면, 저는 글이란 사고와 감정이며 그 형체는 유무형을 넘나들고 종종 그 자체를 넘어서는 총체적 존재라고 봅니다. 따라서, 생각을 지면에, 활자의 형체로, 글자란 형식을 사용해, 문장이란 형상으로 갖추어 구체성과 논리성을 띠는 작업은 언제나 즐겁습니다만, 저에겐 통상적이고 보편적인 글의 범위를 넓혀보고자 하는 야망이 있습니다. 단숨에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건 글만 한 것이 없고, 또 마음을 흔드는 건 예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글도 예술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한 적 없었습니다. 매번 잘하거나 옳지도 못했습니다. 때론 진보는 커녕퇴보하기도 했죠. 하지만 확실한 건, 세상은 나아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 진전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세상에 책임이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상을 다르게 바꾸거나, 세상을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물리적으로 바뀌는 쪽이 조금 더 확연하고 간단할지 몰라도 어떤 초인적인 힘이 있지 않는 이상, 오히려 현실적으로 한 명 한 명의 생각이 이 세상의 긍정적 변화를 향한 점진적 보탬이 될 터입니다. 그러니 희망이 없어도 희망적으로 보고자 하는 생각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당장 필요합니다. 그 다른 생각은 언제나 예술에서 왔습니다. 예술은 기존에 없던 다른 의미를 발견합니다, 소리가 없는 피아노 연주에서 말이죠. 예술은 치열한 논쟁을 불러 일으킵니다, 먹고 나면 없어질 바나나에서도 말이죠. 예술은 한 많은 삶마저도 아름답게 풀어냅니다, 이 좌절스런 상황에서도 신명나는 트로트가 어디서나 울려 퍼지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예술 없이 살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예술이 없다면, 이 세상과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빈궁하고 도태되었을까요? 고로, 저는 이 <추상>을 실험합니다: 그림, 음악, 사진, 영화, 무용에도 그러하였듯이 글에도 다른 생각을 갖자! 글에도 마음을 열어 주세요.

<추상>은 공간과 형상에 구애받지 않은 채, 익숙했던 글도 낯설게 보고, 글자를 파괴하고, 문장을 해체하며 심지어 관념을 표현하는 작업까지 소리와 색깔, 선 등 여러 방식으로 아주 단순하거나 복잡하고 또 아예 모를 것 같으면서 아주 알 것 같은 작품이 될 예정입니다. 아마 누군가는 당황할 것이고, 누군가는 즐거울 겁니다. 그 마음도 예술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분명 질문할 겁니다: “이게 예술이야?” 예술은 자고로 질문과 의문, 논의에서 시작합니다. 자, 시작합니다! 당신의 새로운 삶과 그로 인해 달라질 세상도요!


공감보다는 이해를, 이해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 교환을 고려해주세요!

참고를 위해, 제가 그간 쓴 글의 일부를 brunch.co.kr/@eerouri 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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